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피그만 침공 (문단 편집) == 문제점 == 하지만 작전은 처음부터 산재한 위험 요소와 갖은 문제점들이 많았다. 작전이 갓 세워질 때는 소규모 요원들을 야간에 몰래 투입한다고 계획되었으나, 작전에 간섭하는 목소리가 많아지다 보니 소규모 잠입이 '''사전 폭격을 동반한 대규모 상륙작전으로 불어났다.'''[* 본래 국방부는 미군 정규군(육해공 모두)까지 동원하려 했다. 이것만큼은 너무 모양새가 안 좋고 티가 난다는 이유로 케네디가 막았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도 여러 모로 허술했다. 작전 몇 개월 전에는 뉴욕 타임스가 쿠바에 대한 군사 행동이 있을 것이라는 기사를 내보냈고 CIA 국장은 "수 개월 내에 쿠바의 공산정권은 무너질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입에 올릴 정도였다. 이 외에도 소규모 게릴라를 끊임없이 쿠바에 침투시켜 사보타주 공작을 벌였다. 아무리 쿠바 혁명정권이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수선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 전조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계속된 미국의 위협으로 인해 피델 카스트로는 의심의 눈초리를 곤두세우며 전 병력을 동원해 해안선을 철통같이 감시했다. [[베트남 전쟁]] 때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정치적 제약이 심했다. 어디 반란군도 아니고 엄연한 주권국가인 쿠바를 미국이 공격한다는 모양새를 내보일 수는 없으니 모두가 미국이 뒤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반공 게릴라들은 해외로 도망간 쿠바 망명자들이 주도하고 이를 '익명의 후원자들'이 도와주는 듯한 형태를 취했다. 때문에 무기도 쿠바군 흉내를 냈고 부대 역시 쿠바 망명자가 주도[* 다만 비행, 항해, 폭파 등의 전문 기술이나 전투능력 등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 미국인 교관들이 함께 참전했고 이 사람들이 쿠바에 잡혀서 결국 미국은 굴욕적인 입장에 처하게 된다.]하는 형태를 띠게 되었다. 덕분에 장비의 제한도 많았고 작전도 어려웠다. 지리적인 제약도 있었다. 피그만은 쿠바의 수도 [[아바나]]와는 직선거리 100km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서 상륙에는 최적지였으나 그만큼 경계도 삼엄했다. 또 상륙지와 재집결 지역 사이에는 광활한 늪지대가 있어 사실상 병력 재집결이 불가능했다. 초기의 소규모 병력이라면 별 문제가 아니었으나 [[연대(군대)|연대]] 병력에 육박하는 상륙부대에겐 큰 문제였다. 하지만 작전 추진자들은 이를 간과하고 작전을 진행해 결국 상륙부대는 늪지에 갇혀 꼼짝도 못 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